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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잡·깜둥이·튀기…" 비수가 된 말들

"멕시칸은 게으르고 돈 낭비" 일부 한인들 예사로 비하 발언 한국어 욕설 그들도 알아들어 "아이들에 인식 대물림 겁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는 나의 4명의 자녀들이 언젠가는 그들의 피부색으로 판단 받지 않고 그들의 인품에 의해 판단 받는 나라에서 살게 되리라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마틴 루터 킹 1963년 8월 28일 인품은 각양각색이다. 성장기 경험과 지식습득을 바탕으로 '생각하는 인간'의 향기다. 삐딱하게 바라보는 부끄럼 모르는 한인사회 민족과 인종을 바라보는 한인사회의 향내를 맡아봤다. 몸에 밴 편견과 차별 미국은 다인종사회인 '멜팅팟(melting pot)'이다. 비빔밥처럼 '섞인 것이 좋은 것'이란 철학을 공유한다. 하지만 일부 한인이 내뱉는 민족과 인종 관련 단어는 비수를 담고 있다. 토런스 물류회사에 다니는 인턴 송모(23)씨는 회사 운전사와 말을 섞는 것이 거북하다. 송씨는 "한인 운전사가 멕시코 등 남미 사람은 게으르고 돈을 모으지 않는다며 폄하하는 발언을 너무 자주한다"며 불쾌함을 표현했다. 미국에 온 지 10년째인 숀 김(38)씨는 한인과 이야기하다 '깜둥이 튀기' 발언이 나오면 이제 오기가 발동한다. 김씨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동의를 얻고 싶은 듯 인종차별 단어를 사용하곤 한다"면서 "그런 발언이 나오면 아무렇지 않은 듯 사촌 누나가 한.흑 혼혈 간호사라고 이야기한다. 반응을 지켜볼 뿐이다"라고 말했다. 한인은 우월하다? 미국 이민은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외친다. 반면 일부 한인은 다인종과 다함께 가자는 태도는 등한시한다. 마틴 루터 킹 목사 말을 빌려 인품으로 판단해보면 낙제점인 셈이다. 타민족이나 인종을 향한 차별 발언은 무의식에 기인한다. 그렇게 살아와서다. 생각 없이 내뱉는 말 한마디가 타인에게 큰 상처가 된다는 사실은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LA한인타운 사무직인 정은정(50대.여)씨는 "맥잡"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몸서리친다. 정씨는 "한인타운에서 그분들이 허드렛일을 하는 모습을 자주 봐서인지 비하 발언이 일상적이다"라며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내재한 우월의식을 보인다. 따지고 보면 우월한 것도 없다"고 꼬집었다. 이벤트 대행업체에 다니는 오모(33)씨는 "사장은 남미 직원에게 듣기 민망할 정도의 한국어 욕을 한다. 20~30대인 남미 직원들도 다 안다. 주먹을 쥐고 한 대 때릴 기세지만 60대 사장을 측은하게 보고 참는 모습이다"고 전했다. 생김새보다 인품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면 '비열하다'는 평을 듣는다. 인품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일부 한인은 백인 우월주의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아시아계 한인 사이 차별은 당연시한다. 한인타운에서 생계를 꾸리는 중국동포와 탈북동포가 남한 출신 한인의 차별적 시선이 더 무섭다고 호소한 지 오래다. 브라이언 장(40)씨는 "미국에 처음 왔을 때 '짱개' '쭝땅'이라는 말을 나도 모르게 많이 썼다"며 "생각해보면 유치했다. 태국.베트남.필리핀계는 우리보다 한 수 아래라는 우월적 태도도 결국 인격이 덜 형성됐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정은정씨는 "인종차별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을 볼 때면 한인 아이들이 들을까 봐 무섭다. 아이들이 그런 인식을 대물림하는 모습은 생각하기도 싫다"고 말했다. '우리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창조되었음을 자명한 진리로 삼자'는 미국의 건국이념이다. 김형재 기자 kim.ian@koreadaily.com

2018-04-09

"아내 실종 직후 남편은 재입대했다"…Missing File #2 송 임 조셉

'43년째 행방불명' 최장기 1975년 주한미군과 결혼 미국온지 7개월 만에 실종 사실상 살인사건으로 수사 용의자로 남편 지목됐지만 알리바이 확인돼 혐의 벗어 1975년 6월8일. 델라웨어주경찰국에 실종신고가 접수됐다. 신고인은 대서양의 해변가 작은마을 리호보스비치(Rehoboth Beach)에 사는 백인 남성 앨튼 에드워드 조셉(당시 24세)이다. 그는 "퇴근 후 귀가하니 아내가 집에 없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사라진 아내는 한인 송 임 조셉(Song Im Joseph·당시 20세)씨다. 부부의 집으로 출동한 경찰은 정황상 단순 가출일 가능성을 배제했다. 당시 경찰 조서에 따르면 부엌 스토브 위에는 그녀가 조리 중이던 음식이 있었고, 지갑과 여권, 신분증도 집에 그대로 있었다. 또 지역적 특성상 그녀가 어디론가 떠났다면 쉽게 목격됐어야 했다. 그녀가 남편과 함께 살았던 리호보스비치는 인구 1400여 명이 사는, 한집 건너 모두 알고 지내는 작은 마을이었다. 1970년 인구센서스에 따르면 당시 거주인구의 98%는 백인이다. 한인 여성인 그녀는 어디서든 눈에 띄였을 터였다. 그러나 경찰은 그녀의 소재를 찾아낼 뚜렷한 단서를 찾지 못했다. 그 후 43년이 지난 현재까지 그녀는 델라웨어주경찰국 미제사건 리스트에서 '실종상태'로 남아있다. 송 임씨는 본지가 지난 1월 연중기획으로 첫 보도한 전국 한인 실종자 43명 중 최장기 실종자다. 오랜 기간 잊혀졌던 그녀를 다시 세상에 불러오기 위해 델라웨어주경찰국과 연락했다. 미제사건 책임자인 마크 라이드 수사관은 여전히 그녀의 사건파일을 보관 중이다. 그녀는 공식적으로는 실종상태지만, 경찰은 살해됐을거라고 보고 있다. 당시 후속 수사에서 유력 용의자로 남편 조셉이 지목됐다. 라이드 수사관은 "남편이 실종 신고를 한 정황 자체가 매우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조셉은 아내 송임씨가 실종된 지 이틀이 지나서야 신고했다. 당시 조셉은 경찰이 그 이유를 캐묻자 "가정 불화가 있어 이틀 전 아내가 집을 나갔고 친구집에서 지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라이드 수사관은 "더욱 수상한 점은 실종 신고 나흘 뒤 조셉의 행적"이라며 "돌연 군에 재입대 신청을 했다"고 말했다. 아내의 실종 신고를 한 남편이 아내를 찾지 않고 군에 재입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더우기 둘은 갓 결혼한 신혼부부였다. 송 임씨는 한국에서 주한미군이었던 조셉과 만나 결혼한 뒤 실종 7개월 전 남편을 따라 남편의 고향인 리호보스비치로 왔다. 라이드 수사관은 "백인 일색인 리호보스비치에서 한국인 그녀로선 적응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운전도 할 줄 몰랐고 친구도 1명 뿐이었다"고 말했다. 남편 조셉은 그후에도 아내가 사라진 정황에 대해 여러 번 진술을 번복했다. 날짜를 헛갈리는가 하면, "아내가 30달러를 가지고 나갔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조셉이 혐의를 벗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알리바이가 확인됐기 때문이다. 범행 발생이 가능한 시간대에 직장동료가 조셉과 함께 있었다고 진술했다. 라이드 수사관은 "당시는 지금처럼 DNA를 채취할 수 없었고 감시카메라 등 과학 수사를 벌일 수 없던 시절"이라며 "진술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수사상 한계가 있었다"고 했다.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델라웨어주 경찰은 그녀를 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했다. 사건파일에 따르면 인근지역 경찰국, 연방수사국(FBI)이 합동수사를 벌였다. 그녀의 소셜번호 사용여부나, 출입국 기록을 조회해 추적했다. 그러나 그녀는 소셜번호를 다시 사용하지도, 출국하지도 않았다. 당시 수사관들은 송 임씨의 한국 가족과 국제통화도 했다. 라이드 수사관은 "가족들에 따르면 그녀는 서울에서 남쪽으로 6시간 운전해야 하는 시골에 살았다"면서 "통화 상태가 좋지 않았고 통역도 엉망이어서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전했다. 라이드 수사관은 여전히 송 임씨의 남편을 주시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재입대를 신청한 조셉은 주한미군으로 다시 한국에 나갔다가 몇 년 뒤 돌아왔다. 그후 그는 전과 기록들을 쌓아갔다. 매사추세츠, 뉴햄프셔 등에서 형사처벌을 받았다. 2001년에는 군부대에서 C4폭탄 20파운드를 빼돌렸다가 체포되기도 했다. 라이드 수사관은 송 임씨의 실종은 누군가가 침묵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스무살의 신부는 동네 작은 모텔에서 객실청소부로 일했다"면서 "낯선 땅에서 힘들었지만 행복한 삶을 꿈꿨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누군가는 분명히 그녀에 대해 알고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다만, 발설했을 경우 생명의 위협을 받을까 두려워하는 것"이라며 "43년이나 침묵했으니 이젠 털어놓을 때도 됐다. 그녀를 찾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송 임 조셉씨는 1954년 7월8일생이다. 키 5피트 2인치, 몸무게 100파운드의 작은 체구다. 실종 당시 상의는 목뒤로 끈을 묶어 입는 빨간색 홀터 탑을 입었다. 느슨한 바지에 샌들을 신었다. 손가락에는 결혼반지를 끼고 있었다. ▶제보:(302) 741-2730 마크 라이드 수사관 정구현 기자 chung.koohyun@koreadaily.com

2018-03-14

"아들은 가출한게 아니라 실종됐어요" 3년 전 실종된 길형태씨

70대 노모 애타는 기다림 총영사관서 도움 못 받고 영어 미숙에 신고도 못해 방문에 쪽지 붙이고 외출 "죽으면 잊을 수 있을까" "엄마 잠깐 어디 나갔다가 올게. 그동안 오면 엄마한테 제발 연락해줄래?" 일흔을 넘긴 노모는 얼마 전까지 외출할 때마다 문에 쪽지를 붙여놓고 나섰다. 금방이라도 아들이 돌아올 것 같아 잠시만 집을 비워도 노모는 안심할 수 없었다. 노모의 아들은 길형태씨다. 63년생으로 올해 55세가 되는 길씨는 3년 전 어느 날 LA한인타운 옥시덴탈 선상에 있는 아파트에서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 이 아파트에서 길씨는 노모를 모시고 함께 살았다. 노모는 실종 일자를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날 길씨는 일자리를 알아본다고 아침에 집을 나섰다. "엄마 걱정할까봐 어딜 가는지 자세히 말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아침에 나가면 반드시 저녁에 돌아왔어요. 아들은 가출한 게 아니라 실종된 거예요." 하루 이틀이 지나고 아들을 기다리다 지친 노모는 직접 찾아나섰다. 하지만 일흔 넘은 할머니의 말을 믿어주는 이는 많지 않았다. 노모는 LA총영사관 문을 두드렸다. 사라진 길씨는 영주권자로 대한민국 국적자다. 안내 직원에게 "아들이 실종돼 총영사님께 도와 달라고 부탁하러 왔다"고 했다. 직원은 "총영사님은 바쁘시다"고 했을 뿐 영사관 다른 직원과 만나게 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한인타운 전담지서인 올림픽경찰서도 찾아갔다. 하지만 램파드 경찰서 관할이라고 거기로 가라고 했다. 램파드 경찰서에서도 반응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영어가 미숙한 노모의 말을 경찰은 알아듣지 못했고, 귀담아들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쉰 넘은 성인 남성이 '자발적으로 집을 나갔다'고 봤다. 혹시나 싶어 홈리스센터까지 찾아갔다가 발걸음을 돌리기도 했다. 노모가 가출이 아니라 실종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이유는 아들의 성격 때문이다. 노모의 설명대로라면 아들은 '지극히 내성적'이다. 고등학교 때 농구선수를 하면서 모범학생 상도 받았고, 대학에 진학했던 아들이다. 하지만 대학을 다니면서 문제가 생겼다. 점점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방에서 나오지 않게됐고 대학도 그만뒀다. "그래도 엄마 생각만큼은 끔찍이 하는 아들이었어요. 아들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어미 탓이죠." 길씨의 실종은 한인 이민사회의 단면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아들이 사라져도 실종인지 가출인지 그 여부는 온전히 70이 넘은 노모의 몫이다. 그러다 노모는 본지 29일자 '전국 한인 실종자' 특집 기사를 읽었다. 침침한 눈을 비비면서 끝까지 읽었다고 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제 얘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요." 노모는 기자와 통화에서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딸이 있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아들이 돌아올까 이 땅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노모는 "내가 죽어야 (아들을)잊을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살아있는지만이라도 제발 알려달라"고 했다. 길씨의 키는 182센티미터로 큰 체격이다. 주로 청바지에 점퍼를 입고 가방을 메고 다녔다. 오른쪽 눈 위에는 하얀 점 같은 백태 현상이 있다. 눈썹도 조금 하얗다. 안경을 썼고 휴대전화는 없다. 노모의 마음은 다른 실종자 가족과 다르지 않다. 죽기 전까지 삶은 매일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반복된다. ▶제보: (213)368-2667 정구현·황상호 기자

2018-01-29

"제보는 와도 단서는 줄었다" Missing file #1 일레인 박

1년이 지났다. 누군가에게는 1000년 같은 시간이다. 지난해 1월 28일 20대 한인 여대생 일레인 박(21)이 사라졌다. 하루 전 말리부 북동쪽에 위치한 칼라바사스에 사는 남자친구 집에 갔다가 새벽 4~5시쯤 자신의 차량을 타고 나갔지만 소식이 끊겼다. 나흘 뒤 그녀의 혼다 시빅 차량이 발견됐다. 차는 자신의 집이 있는 라크레센타 쪽이 아닌 반대 방향 말리부 코랄 캐년 산길 부근에 있었다. 차에는 키가 꽂혀 있었다. 휴대전화도 놓여 있었다. 경찰은 범죄 연루 증거를 찾지 못했다. 그녀가 외출을 한 지 3일째 되던 날 가족들은 경찰에 신고했다. 가족들은 경찰에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해 달라고 재촉한 끝에 현장을 찾았다. 어렵게 확인 곳이었지만 수사는 공회전했다. 지난해 9월 어머니 수잔 박(사진)씨는 딸을 찾기 위해 보상금 25만 달러를 내걸었다. 이어 익명의 후원자가 25만 달러를 보탰다. 총 50만 달러가 모였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설탐정도 고용했고 홈페이지(www.elainepark.tips)를 만들어 제보를 기다렸다. 핫라인(800-551-3080)도 개통했다. 끼 많던 대학생 딸은 모델과 연기를 하고 싶어했다. 내심 어머니는 딸이 방송기자가 되길 기대했다. 딸이 실종자로 TV에 나올거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어머니 수잔 박씨와 며칠에 걸쳐 통화를 시도했다. 어머니는 "나중에 통화하자"고 말을 아꼈다. 사건 수사를 맡고 있는 글렌데일 경찰은 실종 1년이 지나도록 뚜렷한 단서를 잡지 못하고 있다. 수사 관계자는 "제보가 끊이지 않고 들어오고 있다"면서도 "결정적인 단서는 사실상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부분의 실종사건은 증거가 부족하다"면서 "실종 형태에 따라 수사 방향이 수차례 뒤바뀌기 때문에 수사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나마 긍정적인 답변은 "모든 가능성을 두고 제보를 받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는 "박씨의 실종과 관련됐다고 의심되는 사람이면 누구든 신고해달라"고 한인들에게 부탁했다. 1000년 같은 시간이 또 지나고 있다. ▶제보:(818)548-4911 글렌데일 경찰국/(800)551-3080 핫라인

2018-01-28

43년간 14개주에서 '잊혀진 그들'

3개 데이터베이스 등록된 전국 한인 실종자수 34명 캘리포니아 10명 가장 많아 최연소 오리건주 4세 지호, 델라웨어 조셉씨 75년에 실종 가족과 재회한 실종자 36% 일반인 제보가 결정적 역할 현재 연방정부 등 전국 실종자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된 한인은 34명으로 나타났다. 이름 영문 성별 지역 실종일 실종시 연령 송임 조셉 Song Im Joseph 여 델라웨어 8/6/1975 21 앤서니 이 Anthony P.Lee 남 가주 10/6/1986 24 박용주 Yong Joo Pak 여 뉴욕 12/28/1991 45 김욱 Wook Kim 남 위스콘신 7/15/1993 22 진 S.진 Jin S.Chin 남 버지니아 4/1/1998 55 박성자 Sung Cha Pak 여 가주 1/5/1999 55 최경선 Kyung Sun Choi 여 워싱턴 2/21/2000 27 송현정 Hyun Jong Song 여 펜실베이니아 1/11/2001 21 박형준 Hyungjun ParK 여 코네티컷 10/10/2001 29 크리스토퍼 오 Christopher Ki Oh 남 뉴저지 10/20/2001 34 진숙 베시어스 Chin Suk Kim Beshears 여 앨라배마 12/16/2001 44 브라이언 이 Brian Lee 남 뉴욕 4/28/2003 23 서신호 Shinho S Seo 남 가주 1/1/2004 34 대니얼 조 Daniel L Cho 남 가주 4/14/2004 18 장영환 Young Hwan Chang 남 노스캐롤라이나 6/11/2004 68 유진 굿선 Yu Chin Goodson 여 앨라배마 3/25/2005 57 황순천 Soon Chon Hwang 남 테네시 5/09/2006 44 김양후 Kim, Yang Hoo 남 가주 7/15/2006 54 노명근 Myoung Keun Noah 남 가주 5/1/2007 60 고준희 James Junhee Goh 남 가주 2/24/2008 24 이지수 Andrew Jisoo Lee 남 오리건 7/11/2009 6 이지호 Alex Jiho Lee 남 오리건 7/11/2009 4 김명기 MyungKi Kim 남 델라웨어 10/25/2009 53 서도 Doh Soe 남 뉴욕 5/29/2011 23 제니퍼 하 Jennifer Ha 여 워싱턴 1/1/2012 17 에릭 윤 Eric H.Yoon 남 뉴저지 12/14/2012 20 김희철 Hee Chol Kim 남 펜실베이니아 2/25/2013 61 윌리엄 구 William Gu 남 뉴욕 7/3/2013 22 오티스 이 Otis S. Lee 남 켄터키 1/26/2014 34 노먼 진 Norman A Chin 남 뉴저지 3/1/2014 37 이현종 Hans Hyung Jong 남 뉴저지 7/4/2014 50 박신형 Shinhyung Park 남 가주 8/28/2015 40 임소리 Soli Lim 여 가주 1/12/2016 15 일레인 박 Elaine Pk 여 가주 1/28/2017 20 연방법무부 산하 사법연구원(NIJ)이 개발한 전국 실종자 통합 데이터베이스 '네임어스(NamUs.National Missing and Unidentified Persons System)'와 가주검찰 전국실종아동센터(NCMEC) 등 3개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해 집계한 결과다. 네임어스에서 29명을 찾았고 나머지 2개 데이터베이스에서 5명을 추가로 찾아냈다. 타주 검찰의 실종 데이터베이스에도 한인들이 더 있을 수 있어 실제 한인 실종자 수는 이보다 많을 것으로 보인다. 34명의 한인 실종자들은 14개 주에서 사라졌다. 캘리포니아가 10명으로 가장 많고 뉴저지와 뉴욕이 각각 4명씩이었다. 앨라배마 델라웨어 오리건 펜실베이니아 워싱턴 등 5개 주에서도 2명씩 등록되어 있다. 남성이 23명으로 여성보다 2배 이상 많다. 최연소 실종자는 실종 당시 4살이었던 이지호군이다. 지난 2009년 7월11일 형 지수(당시 6세)군과 함께 오리건에서 사라졌다. 어머니 손모씨와 별거중이던 아버지 이모씨가 이들 형제를 데려간 뒤 연락이 두절된 상태다. 형제를 포함해 실종된 미성년자는 4명이다. 20대가 12명으로 가장 많고 50대 6명 30.40대 각각 4명 60대 3명이다. 2000년부터 2009년 사이에 가장 많은 17명이 행방불명됐다. 10~3월에 22명이 사라졌다. 최장기 실종자는 43년 전인 1975년 6월8일 델라웨어주 휴양도시 레호보스 비치(Rehoboth Beach)에 살던 송 임 조셉(Song Im Joseph)씨다. 당시 21세였던 조셉씨는 실종 7개월 전 한국에서 주한미군인 남편 앨톤 조셉과 결혼해 낯선 땅에 왔다. 경찰은 그녀가 살해된 것으로 보고 있다. 조셉씨가 만약 살아있다면 현재 63세다. NIJ에 따르면 현재 전국의 실종자는 8만5000여 명으로 추산된다. 신원 불명 유해 4만여 구를 포함한다면 12만 명을 넘어선다. 그러나 NIJ의 네임어스 데이터베이스(findthemissing.org)에 10월31일 현재까지 등록된 실종자는 4만6692명에 그친 상태다. 나머지 실종자들은 가족 혹은 수사당국이 등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7년부터 만들어진 이 데이터베이스로 전국의 수사기관들이 실종자 정보를 공유하면서 큰 효과를 거뒀다. 등록된 4만6692명 중 36%가 가족과 재회했다. 찾은 실종자 중 미성년자는 3058명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던 실종 아동 부모들의 꿈같은 기쁨은 여러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그동안의 성과에도 네임어스에 등록된 실종자의 64%는 여전히 소재 파악이 되지 않고 있다. 주별로 다소 차이는 있지만 법적으로는 실종일로부터 통상 7년이 지나면 사망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 기준대로라면 한인 실종자 34명중 23명은 사망자로 분류된다. 사연은 개별적이지만 실종자 가족들이 공통적으로 호소하는 한 마디가 있다. "생사라도 확인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간곡한 부탁이다. 잊혀졌던 이들을 다시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관심과 제보다. 정구현·황상호기자

2018-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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